낯선 사람들을 위한 화면
지금 작업하고 있는 반장노트는 특정 조직 소속 인원만 쓰는 게 아니라, 반도체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작업자분들과 팀장님들을 타겟으로 하는 앱입니다. 현장에서 사람을 모집하고, 일하고 싶을 때 구직하는 분들. 저와는 접점이 거의 없던, 다소 생소한 영역에 계신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 앱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어떤 막막함이 있었습니다.
전문가용 소프트웨어를 만들 때는 이 사람들은 이미 업무 맥락을 알고 있다는 전제 위에서 화면을 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장노트는 그 전제를 그대로 가져오기 어렵습니다. 사용자층의 연령대나 스마트폰 사용 능력을 미리 단정하기보다, 처음 화면을 마주했을 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지점이 무엇인지를 더 살펴야 한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사용자가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 없이 화면을 설계해야 한다는 점,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화면 하나를 만들 때 고려해야 하는 것들의 종류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
그래서 화면을 만들 때마다 은근한 불안이 따라옵니다. 이 버튼을 누르면 뭐가 일어나는지 바로 알 수 있을까? 이 문구를 보고 다음에 뭘 해야 할지 헷갈리지 않을까? 혹시 이 단어가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을까?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지게 됩니다.
예를 들면 입력 필드의 플레이스홀더 하나를 정할 때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텍스트 입력 칸에는 "~입력해 주세요", 선택 필드에는 "~선택해 주세요", 숫자만 받는 칸에는 "숫자만 입력해 주세요"처럼 필드 성격에 따라 안내 문구를 다르게 가져갈지를 두고 고민했습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지금 이 칸에 뭘 써야 하는지 한 번에 알 수 있느냐 없느냐가 여기서 갈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입력"이라는 한 단어로 퉁치면 편하지만, 그러면 숫자만 받는 칸에 글자를 입력하려다 오류를 겪는 사용자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UI를 짤 때는 익숙한 디자인 문법, 예를 들면 아이콘만 있으면 직관적으로 이해할 것이다 라거나 이 정도 인터랙션은 요즘 다 익숙하다 같은 감각을 그대로 적용해도 되는지 매번 다시 검토하게 됩니다. 이 감각은 스마트폰과 여러 앱을 매일 쓰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것이지, 타겟 사용자의 감각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이 불안은 사실 나쁜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 불안 덕분에 화면을 만들 때 사용자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됐습니다. 사용자가 스마트폰이나 앱 사용에 서툴 것이라는 전제가 아니라, 이 앱이 다루는 업무나 화면 흐름 자체는 저보다 사용자가 훨씬 더 잘 아는 영역이라는 것, 반대로 저는 이 도메인에 낯선 사람이라는 사실을 계속 의식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정도는 당연히 알겠지라는 제 쪽의 가정을 줄이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나의 방향이 생겼습니다. 친절하게 쓰자. 그리고 다음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하자. 사용자가 화면을 보고 멈칫하지 않도록, 다음에 뭘 해야 할지 스스로 판단하지 않아도 되도록 문구로 안내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받은 피드백은 정반대였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버튼 문구에 대해 최대한 간결한 어미를 써달라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친절하게, 설명하듯 쓰고 싶었는데, 정작 요구받은 건 짧고 단정한 어미였습니다. 예를 들면 처음에는 "로그인하러 가기" 같은 식으로, 다음 행동을 부드럽게 권유하는 톤으로 버튼 문구를 썼습니다. 이 버튼을 눌렀을 때 실제로 로그인이 완료되는 게 아니라 로그인 과정으로 넘어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로그인"이라는 명사형보다는 "~하러 가기"처럼 이동의 뉘앙스를 담은 어미를 쓰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피드백은 "로그인" 정도로 줄여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짧으면 너무 딱딱하고 차갑게 느껴지지 않을까?, 사용자가 이걸 보고 로그인이 바로 되는 건지, 로그인 페이지로 넘어가는 건지 헷갈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습니다. 이런 피드백이 제가 생각했던 친절함과 실제로 요구되는 간결함이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친절하다는 것을 설명을 충분히 덧붙이는 것과 동일시하고 있었는데, 정작 버튼이라는 자리에서는 그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걸 그 순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비슷한 피드백은 홈 화면에서도 있었습니다. 홈 화면 상단에 "안녕하세요~ 사용자님, 오늘도 수고하세요!" 같은 인사 문구를 넣었는데, 이런 문구는 필요 없다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사실 이런 인사말은 여러 앱에서 흔히 쓰이는 패턴이라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요소였습니다.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건네면 앱이 나를 알아봐 준다는 느낌, 사람 대 사람처럼 말을 거는 듯한 친근함을 줄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서비스 초기에 사용자가 낯설게 느끼지 않도록 톤을 부드럽게 여는 장치로 자주 쓰이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반장노트 사용자에게는 이 인사말이 앱을 쓰는 목적과는 상관없는 장식처럼 느껴질 수 있었습니다. 반장노트를 켜는 순간은 대개 오늘 일할 곳을 찾거나, 지원 현황을 확인하거나, 급하게 사람을 구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그 앞에 인사말 한 줄이 놓이면, 정작 필요한 정보에 닿기까지 한 스텝이 더 늘어나는 셈입니다. 친근함을 주기 위해 넣은 문구가, 오히려 사용자가 원하는 목적에서 한 걸음 멀어지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걸 이 피드백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돌아보면 버튼 문구도, 인사말도 이유는 비슷했습니다. 버튼은 사용자가 화면을 훑어보는 짧은 순간에 즉각적으로 인지하고 눌러야 하는 요소입니다. 버튼 안에 문장이 길어지면 오히려 읽는 데 시간이 걸리고, 시선이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사용자는 이 버튼을 눌러도 되나? 하는 망설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인사말 역시 마찬가지로, 화면에 꼭 필요하지 않은 문구가 하나 늘어날 때마다 사용자가 정말 찾는 정보까지 도달하는 거리가 그만큼 멀어집니다. 친절함이 항상 문구를 하나라도 더 얹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 피드백들을 받고 나서야 제대로 체감했습니다.
그래서 찾은 타협점
결국 내린 결론은 버튼은 간결하고, 그 대신 설명이 필요한 자리에서는 확실히 친절하게 알려주자는 것입니다. 버튼은 사용자가 지금 무슨 행동을 하는지 짧고 명확하게 알려주는 역할만 하면 됩니다. "확인", "삭제", "다음"처럼. 군더더기 없이, 사용자가 시선을 두는 즉시 무슨 뜻인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어미를 부드럽게 늘이거나 상황을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걸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대신 온보딩 화면이나 안내 문구, 빈 화면(엠프티 스테이트)처럼 설명이 필요한 지면에서는 최대한 쉽고 다정하게 풀어썼습니다. 예를 들어 데이터가 아직 없는 빈 화면에서는 "진행 중인 구인이 없어요. 지금 바로 구인을 등록해 보세요!"처럼 상황을 설명하는 문구와 함께 액션 버튼을 붙여, 사용자가 다음에 뭘 해야 할지 스스로 판단하지 않아도 되게끔 안내했습니다. 이런 자리는 사용자가 시간을 들여 읽어도 되는 자리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오히려 충분히 친절하게 쓰는 게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렇게 역할을 나누고 나니, 버튼은 명확해지고 화면 전체는 친절해지는 균형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문구를 하나의 톤으로 통일하려는 게 아니라, 각 요소가 화면 안에서 맡은 역할에 따라 톤을 다르게 가져가야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 경험에서 정리한 나만의 UX라이팅 원칙
이 일을 겪고 나서, 문구를 쓸 때 기준으로 삼게 된 것들이 몇 가지 생겼습니다.
1. 자리마다 요구되는 친절함의 형태가 다릅니다. 버튼처럼 즉각적인 판단이 필요한 자리와, 온보딩이나 안내문처럼 읽는 데 시간을 들여도 되는 자리는 친절함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야 합니다. 전자는 짧고 명확한 게 친절함이고, 후자는 충분히 설명하는 게 친절함입니다. 같은 톤을 화면 전체에 억지로 통일하려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사용자를 배려하는 방법이었습니다.
2. 사용자가 "생각하지 않게"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친절한 문구란 사용자가 화면 앞에서 멈춰서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문구입니다. 설명을 많이 붙이는 게 아니라, 사용자가 다음에 뭘 해야 할지 스스로 유추하지 않아도 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문장의 길이가 아니라 사용자가 느끼는 망설임의 크기로 친절함을 판단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3. 익숙한 감각을 사용자의 감각과 동일시하지 않습니다. 디자이너로서 매일 여러 앱을 접하다 보면 이 정도는 다 알겠지 하는 감각이 생깁니다. 하지만 이 감각은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지, 타겟 사용자의 경험에서 나온 게 아닙니다. 특히 접점이 없는 사용자층을 대상으로 할수록,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한 번 더 의심해봐야 합니다.
4. 반복되는 말과 의미 없는 문구를 줄입니다. 친절하게 쓰겠다는 마음으로 문장을 늘리다 보면, 정작 다시 읽어봤을 때 같은 뜻을 두 번 말하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설명을 충분히 하는 것과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다른데, 쓸 때는 그 차이가 잘 안 보입니다. 인사말처럼 화면의 목적과 상관없이 톤만 얹는 문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있으면 분위기는 부드러워지지만, 없어도 사용자가 화면을 이해하고 쓰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는 문구라면 굳이 넣을 이유가 없습니다. 문구를 다 쓰고 나면 한 번 소리 내어 읽어보면서, 앞 문장이 이미 말한 걸 뒤 문장이 다시 말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 문구를 지워도 사용자가 화면을 쓰는 데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5. 이 단어가 일상 용어인지, 학습이 필요한 용어인지 구분합니다. 문구에 어떤 단어를 쓸지 정할 때는, 그 단어가 사용자가 이미 일상적으로 쓰는 말인지, 아니면 이 앱이나 이 업무 안에서만 쓰이는 말이라 처음 접하면 낯설게 느껴질 말인지부터 구분하려 합니다. 후자라면 그 단어를 화면에 그대로 쓰기보다, 풀어서 설명하거나 처음 만나는 자리(온보딩, 툴팁 등)에서 짧게라도 안내를 붙이는 쪽을 택했습니다. 반대로 이미 익숙한 말까지 굳이 풀어쓰면 오히려 문장만 길어지고 어색해진다는 것도 함께 알게 됐습니다.
이 외에도 배운 게 있다면, 버튼 문구 하나가 개발 공수와 레이아웃 안정성에 영향을 준다는 걸 겪으며 문구는 디자이너 혼자의 취향이 아니라 개발자·퍼블리셔와 함께 맞춰가는 협업의 결과물이라는 점, 그리고 "간결하게 써달라"는 피드백을 처음 받았을 때 느꼈던 당혹감도 실은 취향 대결이 아니라 같은 목표를 다른 자리에서 다르게 풀어야 한다는 관점의 차이였다는 점입니다. 피드백을 받았을 때는 방어적으로 반응하기보다, 그 피드백이 어떤 자리·어떤 이유에서 나온 것인지 먼저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도 함께 배웠습니다.
결국 UX라이팅은 나를 덜어내는 일이었습니다
버튼 문구가 길어지면 개발 쪽에서는 예외 케이스가 늘고, 퍼블리싱 쪽에서는 줄바꿈이나 버튼 크기가 깨지는 문제가 바로 생깁니다. "친절하게" 쓰고 싶어서 늘린 문장 하나가 다른 직군의 작업에도 영향을 준다는 걸 알고 나니, 버튼을 간결하게 써달라는 피드백이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직군이 함께 다루는 화면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칙에 가깝다는 걸 이해하게 됐습니다.
돌이켜보면 UX라이팅을 잘하고 싶다는 마음의 시작은 내가 이해시켜야 한다는 부담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필요했던 건 제 방식대로 친절하게 쓰는 게 아니라, 각 화면과 요소에 맞는 톤을 구분하는 감각이었습니다. 버튼에는 버튼의 역할이 있고, 설명 문구에는 설명 문구의 역할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 그 역할을 정하는 기준이 제 취향이 아니라 사용자가 그 화면에서 실제로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Eykim